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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에 대해서 알아보자

by noo min23 2019.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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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는 모든 것들아, 야훼를 찬미하여라. 할렐루야. (공동번역 성서)
시편 150편 6절[1]

구약 성경의 대표적인 시가서.
2. 형성[편집]
작성연대는 기원전 1440년에서 기원전 586년까지, 약 900여년 간 기록되어 왔다. 성경에 수록된 경전들 중 가장 오랜 기간이다. 총 15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2]

다윗과 솔로몬이 주요 작성자로 나온다. 예루살렘 대신전에서 주님을 찬양하던 성가대의 후예로 추정되는 인물과 신전에 올라가는 노래 등도 포함된다. 심지어 모세가 지었다는 시편도 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 등에서 쓰이던 종교노래를 모은 가사집 5권을 한데 모은 것으로 추정한다. 그 중에는 왕의 즉위식장에서 쓰이는 노래도 있다. 그 외에도 아삽, 고라의 자손, 모세 등 여러 저작자가 있다.

시편의 주된 저자라고 알려진 다윗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시편 내용은 절규에 가깝다. 다윗이 이렇게 한 맺힌 남자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사무엘상·하 이야기의 반은 도망다니는 이야기니, 다윗 왕의 인생이 험하기는 했다. 하지만 시편은 '복되어라.'[3]로 시작하며 찬가도 많다. 광야의 목자로 시작해서 온갖 험난한 삶을 살아온 다윗의 생애를 생각하면 아이러니. 그에 비해 왕자로 태어나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린 아들이 쓴 전도서는 시작부터…[4]

다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이 짓고도 다윗의 노래라고 전해지는 것이 많다는 것이 중론. 몇몇 번역본에서 '다윗의 노래'라고 적혀있는 것들의 히브리어 성서 원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윗이 지었다고 하는 것도 있지만 다윗에게 바치는 노래라든지 다윗을 위한 노래 같은 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것들까지 모조리 뭉뚱그려서 다윗의 노래라고 번역해 버린 셈. 이 부분은 성서 본문에서는 모두 '레'다윗이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여기서 '레'가 다윗을 위한, 다윗에 관한, 다윗의 '방식을 따라' 또는 다윗에게 헌정된 등등 다양하게 번역할 수 있다. 

나중에 사탄이 시편의 내용 중 한 구절을 인용하며 예수를 시험하게 된다.
3. 전례에서의 사용[편집]
기독교 교회 입장에서 성경의 모든 책들이 다 중요하겠지만, 경중을 굳이 따지자면 시편은 복음서와 더불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성경이라 할 수 있다. 일종의 성경독서표인 성서정과의 구성을 봐도, 1독서(시편을 제외한 구약), 시편, 2독서(사도행전 및 서신서), 복음서로, 복음서와 함께 시편이 갖는 위치에 대해 쉽게 알 수 있다. 가톨릭·정교회·성공회에서는 미사 중 제1독서가 끝나고 화답송으로 시편의 구절 중 하나를 읊거나 노래하고, 개신교에서는 예배 중 교독문에 시편을 주로 쓴다. 전도용으로 돌려지는 성경이나 옛날 성경을 보면 신약성경 전권과 뒷쪽에 시편이 붙은 구조가 많다.
3.1. 가톨릭[편집]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양식인 트리엔트 미사에서는 성수예절에 시편 51편, 층하경에 시편 42편이 사용되었고, 그 외에 초입경(입당송), 층계경, 복음 환호송(서간경과 복음경 사이에 들어가는 노래), 제헌경(봉헌송), 영성체경(영성체송)에도 시편이 사용되었다. 공의회 이후에도 미사 입당송, 위령 기도(129장)[5], 성인 호칭 기도(69장) 등 많은 기도문이 시편을 사용하고 있다.

영미권 가톨릭에서는 RSV-CE, NRSV-CE, NAB 등의 여러 가톨릭/에큐메니컬 번역과 별개로, The Grail Psalms라는 별개의 전례용 시편 번역이 쓰인다.
3.2. 정교회[편집]
동방정교회의 수도자들은 하루에 시편 1편부터 150편까지 모두 기도 중에 읊는 것이 의무였다. 가톨릭은 조금 나아서 일주일 안에 다 해야 했다. 그 외에 사흘이나 나흘 만에 다 읊게 하는 곳도 있었다. 흠좀무.

오늘날도 동방정교회에서는 이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으며, 한편 서방에서는 글 모르는 수도자들이 시편 대신 주님의 기도를 150번 외우는 것으로 이것을 대신하다 묵주기도로 대체된다. 다만 가톨릭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례 개혁으로 시편을 4주일 간에 걸쳐 모두 외우게 했는데, 이는 대다수 성직자들이나 수도자들이 예전과 달리 다른 일이 있는 경우가 많아 옛 방식으로는 기도를 제대로 할 수가 없어서 아예 원칙을 바꿔버린 것이다.
3.3. 개신교[편집]
대다수 한국 개신교 교회에서는 교독문으로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원래는 찬송가나 성가로 만들어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종교개혁 당시에 칼뱅이 찬송가를 인간이 직접 만들어 부르는 행위를 비성경적이라고 금지시킨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영미권이나 네덜란드의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찬송가를 직접 짓기 보다는 시편을 편집한 찬송가(metric psalters)를 불러왔으며 현대에도 일부 교회에서는 창작 찬송가를 거부하고 시편찬송만 부르는 사례도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도입 시도가 늘 있어왔으나 통일찬송가가 익숙한 환경으로 인해 아직까지는 소수의 보수 개혁주의 교회들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형편이다. 2017년 4월 기준으로 인터넷 기독교 서점에서는 고려서원에서 출판한 시편찬송가를 구할 수 있다.

루터교나 성공회에서는 예배에서 제1독서(구약성서 낭독)과 제2독서(서신서 낭독) 사이에 시편을 교독으로 운율에 맞춰 부르는 전통이 있다. 성공회에서는 이를 특별히 Anglican chant라고 부르며 소중히 여긴다. 
3.3.1. 성공회[편집]
16세기 교회 개혁에 대한 영국 국교회의 노력은 예배에 사용되는 음악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새로운 찬송가들을 받아들이는 한 편, 시편을 위한 더 쉬운 음악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시편을 부르는 데에 사용한 그레고리오 성가(Gregorian Chant)는 가사를 전달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었지만 회중이 함께 부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앵글리칸 찬트(anglican chant)는 단순한 멜로디와 4성부 화음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시편은 히브리 문학의 특징으로 두개의 문장이 병행법(parallelism)에 의해 대구를 이루는 경우가 많은데, 앵글리칸 찬트는 이런 구조의 가사를 표현하기에 적합하게 발전되었다. 

익숙한 멜로디에 성경구절을 실어 부르는 것이 말씀을 묵상하는 데에 얼마나 좋은 지는 신앙생활을 오래 해본 기독교인이라면 익히 알고있을 것이다. 성공회에서는 단순하면서 익숙한 앵글리칸 찬트에 시편 말씀을 붙여 매 감사성찬례마다 부르고있다. 또한 주보에 적힌 가사를 읽으며 찬양하게 되니, 성경 말씀으로 이루어진 가사 전달이 더욱 완벽해 진다. 성공회 교인들에게 앵글리칸 찬트는 매우 훌륭한 말씀 묵상의 도구가 되고 있는 것.[6]

현재 대한성공회는 주일 감사성찬례에 사용하는 시편과 성무일과 송가를 앵글리칸 찬트를 사용해서 부르고 있으니, 앵글리칸 찬트의 형식이 궁금한 위키러들은 가까운 성공회 성당의 감사성찬례에 들러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영국의 주요 성공회 대성당의 성가대가 부르는 시편 찬송은 무척이나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NoWvpOxF1EU&t=7115s
4. 특징[편집]
원래는 각 문장의 첫 글자가 히브리어 알파벳의 순서를 따라 지어졌다. 다윗의 먼치킨성을 알 수 있는 부분. 공동번역이나 가톨릭 성경에는 알파벳순이라고 적혀있고 어느 구절이 해당 알파벳으로 시작하는지 다 표시되어 있는데, 개신교 개역성경에는 개정 전후 막론하고 그런 거 없다.[7]

시편 답게 운율이 꽤 아름답다고 하는 데 당연하지만 저자의 상당수는 기원전 히브리인들이라 히브리어 운율 따위는 아무리 번역을 잘 해도 느낄 수 없다. 그래도 교황청에서는 가급적 번역어의 운율감을 살려 번역하기를 추천하고 있기는 한데, 역시 어느정도 한계가 있는 편. 어찌보자면 그 옛날 조상님들이 한시를 번역하면서 느겼던 멘붕을 성경 번역자들이 재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고전 히브리어와 한국어의 차이는, 한문과 한국어의 차이보다 더 크다(...)

시편에는 성경 전체에서 절이 제일 많은 편이 수록된 것으로 유명한데, 바로 119편. 176절까지 있다. 성경 읽기를 시도하는 사람에겐 레위기 이후로 최대 고비일 수도. 하지만 아직 역대상이 남아 있다! 이는 8절구라고 해서 히브리 알파벳 순서를 따라 8절씩 된 시편이다. 동서방교회에서 모두 기도문으로 즐겨 사용했다. 반면 성경 전체에서 절이 제일 적은 편도 시편에 있다(117편). 사실 119편을 제외하면 시편의 편들은 전반적으로 길이가 짧은 편이다.

번역본의 문학성을 평가할 때 이 시편이 기준이 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영어 성경 중에 킹 제임스 성경이 성서비평학적으로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문학성에서 아직도 찬사를 받고 있다. 현대 영어 역본들도 킹 제임스 성경의 문학성을 벤치마킹(NIV 등)하거나 제대로 계승하는 것(RSV, NRSV, ESV 등)이 편찬 목표일 정도.
4.1. 장절의 구분[편집]
히브리어 마소라 사본과 그리스어 칠십인역은 각각 시편의 편수를 매기는 방법이 다르다. 양쪽 다 시편이 150편인 것은 동일하지만 마소라 사본에서는 한 편인 것이 칠십인역에서는 두 편인 등 세부적으로 살짝 다르다.
마소라
칠십인역
1~8편
9,10편
9편
11~113편
10~112편
114,115편
113편
116편
114,115편
117~146편
116~145편
147편
146,147편
148~150편

개신교 성경은 히브리어 마소라 사본을 따르고, 정교회 성경은 그리스어 칠십인역을 따른다. 현대 가톨릭 성경은 마소라 사본을 따르되 칠십인역 성경의 장 번호를 따로 표기한다. 과거의 가톨릭 불가타 성경은 칠십인역을 따랐는데 지금도 전례에 사용하는 시편에는 그 흔적이 남아있다. 그래서 위에 링크된 가톨릭의 위령기도, 성인호칭기도 역시 각각 마소라 기준으로는 130편, 70편인 것을 129편, 69편이라고 표기하는 것이다.

많은 칠십인역 사본에는 150편의 시편 이외에 추가로 짧은 시편이 하나 더 있는데, 이를 흔히 시편 151편이라고 부른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면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으로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에서는 이것을 제2경전으로 인정한다. 히브리어 성경의 마소라 본문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한편 시리아어 역본 일부에는 그 뒤로도 시편이 네 편 더 붙어있는데 정경으로 쓰는 교파는 없다.

절 역시 각 시편의 표제를 본문 1절에 포함시키느냐 아니면 표제 자체를 1절로 보고 2절부터 본문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번호 수가 한 단계 내려가는 차이점이 있다.
5. 유명한 시편[편집]
5.1. 23편[편집]

동방정교회 성가, 시편 22편(개신교의 경우 23편) 〈주님은 나의 목자...〉


시편 23편, 나운영 작사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어린이용 찬송가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
5.2. 69편[편집]

성공회 시편 69편 〈주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5.3. 137편[편집]
바빌론에 끌려간 유대인들이 망향의 고통을 노래한 시편 137편을 바탕으로 한 노래도 있다.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의 가사도 해당편을 변형시킨 것이다.
바빌론 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눈물 흘렸다.
그 언덕 버드나무 가지 위에 우리의 수금 걸어놓고서.
우리를 잡아온 그 사람들이 그 곳에서 노래하라 청하였지만, 우리를 끌어온 그 사람들이 기뻐하라고 졸라대면서 "한 가락 시온 노래 불러라." 하였지만
우리 어찌 남의 나라 낯선 땅에서 야훼의 노래를 부르랴!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이 말라버릴 것이다.
네 생각 내 기억에서 잊혀진다면 내 만일 너보다 더 좋아하는 다른 것이 있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을 것이다.
야훼여, 잊지 마소서. 예루살렘이 떨어지던 날, 에돔 사람들이 뇌까리던 말, "쳐부숴라, 바닥이 드러나게 헐어버려라."
파괴자 바빌론아, 네가 우리에게 입힌 해악을 그대로 갚아주는 사람에게 행운이 있을지라.
네 어린것들을 잡아다가 바위에 메어치는 사람에게 행운이 있을지라.
시편 137편 1~9절

망향의 고통과 해방에의 기원이라는 인류 공통의 정서를 자극한 덕분에 대중매체에서 많이 다뤄진다. 아래쪽 참조.
6. 대중매체에서의 시편[편집]
애니메이션 슈발리에에서는 시편의 구절을 통해 신비로운 힘을 다루는 '시인'이라는 존재가 나온다.
폴아웃: 뉴 베가스 Honest Hearts의 조슈아 그레이엄이 위의 시편 137편을 인용한다.
라이트 노벨인 소녀는 서가의 바다에서 잠든다에 시편이 언급된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몸은 결국 버티지 못했고, 햇빛이 거의 닿지 않는 도서관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석벽에 빈 구멍에 놓인 해골과 오래된 시편을 손에 쥔 채 시체와 다름없이 쓰러져 있던 나를, 우연히 담력 시험을 한 젊은 부제들에게 발견되어 구조되었던 것이다.
『소녀는 서가의 바다에서 잠든다』
6.1. 시편 137편[편집]
시편 137편을 바탕으로 한 곡이 꽤 많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 코랄 '바빌론 강 기슭에서'(An Wasserflüssen Babylon)(BWV267) : 가사와 멜로디 모두 원작의 비감함을 절절히 보여주는 곡이다. 가사는 독일어 위키 참조. 코랄 전주곡으로 편곡한 곡 BWV653도 있다.
Peter, Paul and Mary - Babylon/Oh, Sinner Man Lyrics : 포크송이며 이 곡을 독일 그룹 Gregorian이 리메이크한 곡(Babylon)은 거의 창법만 다를 뿐인데도 원곡과 달리 공포스럽다.
Boney M. - Rivers of Babylon : "다들 이불 개고 밥 먹어" 등 몬더그린과 롯데의 강민호로 유명하다 


최초의 뉴클리어 아포칼립스 소설로 평가받는 바빌론의 물가에서도 이 137편의 내용을 오마주했다.
7. 기타[편집]
공동번역성서에서 시편 번역을 담당했던 사람은 바로 저 유명한 문익환 목사. 시편이라는 것에 걸맞게 상당히 시적으로 번역을 잘했다는 평가가 있으며, 그 과정에서 아예 본인이 시인이 되기도 했지만, 개신교에선 안 쓰인데다 가톨릭에서도 시편만은 기존의 '최민순 사도 요한 신부 역본'을 사용했다.

[1] 시편의 마지막 장 마지막 절
[2] 시편만큼은 장 - 절 구분이 아닌 편 - 절 구분을 써서 시편 ○○장이 아니라 시편 ○○편이라고 한다.
[3] 시편 1편 1절 중
[4] 헛되고 헛되다, 설교자는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전도서 1장 2절)
[5] 집안에 돌아가신 분이 계시면 기도 이름은 몰라도 "깊은 구렁 속에서"와 "파수군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는 기억날 것이다(...)
[6] 복음성가를 비롯한 개신교의 성가들이 최근들어 가사의 전달보다는 화려한 곡조나 유행하는 리듬을 좇는 데에 더 치중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비판이 있다. 성공회가 가지고 있는 이런 앵글리칸 찬트의 모습들을 통해, 현대 개신교 성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7] 원래 개역성경이 이런 데서 많이 불친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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