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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것들/IT

열왕기에 대해 알아보자

by noo min23 2019.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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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야훼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마음이 이러하고, 내가 너와 계약을 맺으면서 일러둔 법들을 지키지 않았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너에게서 쪼개어 너의 신하에게 주리라.
열왕기상 11장 11절(공동번역성서)
그래서 야훼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셨다. "나는 이스라엘을 내쫓은 것처럼 유다도 또한 내쫓으리라. 일찍이 선택하여 내 것으로 삼았던 이 예루살렘 도성과 내 명의로 삼았던 이 성전을 버리리라."
열왕기하 23장 27절(공동번역성서)

구약성경의 한 권. 원래 한 권이었으나 분량이 너무 길어서 상권과 하권으로 나누게 되었다. 유대교 탈무드 전승에는 예언자 예레미야가 썼다고 전해지는데, 사실은 이미 있던 자료들을 짜깁기한 문서로 엮은이는 신명기계 역사가라고 한다.

열왕기가 역대기와 다른 점은 북이스라엘, 남유다 역사 모두를 다루며 왕 중심보다는 선지자 중심의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다. 열왕기를 상하로 나누는 기점은 아합·엘리야 사망 시점, 역대상·하는 다윗 왕이 기점이다. 그리고 저자가 북이스라엘 사람인지 북이스라엘이 남유다한테 엄청나게 발린 사건[1]을 몇줄로 기록한 반면 남유다 사람이 저자인 듯한 역대기에서는 거의 한 장에 걸쳐 서술하고 있다. 이것도 애국심이려나...

또 이스라엘과 유다 왕의 행적에 관한 부분을 보면, 해당 왕 재위시 일어난 굵직한 사건만 기술해 놓고 "나머지 행적은 《이스라엘(또는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어 있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로 적혀 있는 것도 특징인데, 문제는 그 역대지략들이 진작에 다 소실되었다는 것.

유명한 시바의 여왕이나 원주율을 3으로 이해했다는 부분,[2] 타임 패트롤(폴 앤더슨)의 한 단편의 제목인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새' 등도 모두 여기서 나오는 부분이다.[3] 슈나미티즘의 어원이 되는 일화도 여기에 나온다.
2. 대략적인 내용[편집]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 3 

판관기의 마무리 내용인 21장 25절을 보면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서 사람마다 제멋대로 하던 시대'라고 되어 있는데, 정작 왕정시대로 접어든 열왕기의 내용을 보면 왕이 생겼어도 이스라엘의 이방 신을 섬기다가 벌을 받는 악순환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애초에 사무엘기에 기록된 두 왕들이 하느님을 거역하고 악행을 저질러 벌을 받는 내용들이 잔뜩 나와 있었고, 그리고 그 악행의 범위와 정도가 뒤로 가면서 더욱 커지는 것도 판관기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그렇게 계속해서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거역하고 떠난 결과, 두 나라는 시기의 차이는 있으나 결국 멸망하고 오랜 포로생활에 접어들게 된다.
3. 열왕기상(열왕기 상권, 1열왕)[편집]
다윗의 말년에, 솔로몬이 왕으로 등극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남유다는 여호사밧이 죽고 그 아들 여호람(요람)이, 북이스라엘은 아합이 죽고 그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는 것까지 서술하고 있다.

다윗왕 말년무렵 다윗의 건강이 안좋아진다. 그러자 아도니야가 다윗 몰래 "왕위 계승중입니다. 아버지"를 시전하고, 이를 알아차린 선지자 나단과 솔로몬의 어머니 바쎄바가 다윗의 결정인줄 알고 다윗에게 찾아가서 "여보 나랑 결혼할때 내 아들 왕 시켜준다며?" "약속이 다르잖아! 왜 아도니야가 왕이 되냐고!"라고 말했고 그 당시 다윗은 아도니야의 계획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다윗은 ''그게 무슨말이오?"라고 되묻고 진상을 알게 된다.

솔로몬은 왕이 된 후 성전과 왕궁을 건축하고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말년에 정략결혼으로 들어온 많은 후궁들의 영향으로 우상숭배가 퍼지기 시작하는 것을 방치했다. 하느님은 이에 대해 솔로몬에게 2번 경고하지만 솔로몬은 듣질 않았고, 결국 '끝까지 내 말을 안 들었으니 12지파에서 10지파를 빼앗아 네 부하에게 주리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솔로몬 사후 통합 이스라엘 왕국은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 왕의 계기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되었다. 백성들이 와서 '세금 좀 줄여주세요' 하자 자기 신하들에게 의견을 묻는데, 솔로몬을 섬겼던 나이 좀 있는 신하들은 '줄여줍시다'라고 한 반면 자기 또래의 신하들은 '오히려 더 무겁게 합시다'라고 했다. 그리고 르호보암은 후자에 필이 꽂혔다.

르호보암에게 반기를 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감독 아도람을 쳐죽이고, 마침 돌아온 여로보암 1세[4]을 왕으로 세우게 되어 결국 유다와 베냐민을 제외한 나머지 10지파가 북이스라엘로 독립하였다.

그러나 여로보암과 북이스라엘은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다윗이 행던 것처럼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다윗에게 해준 것처럼 너를 위해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겠다"는 하느님의 말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이유[5]로 우상숭배[6]를 하게 되어 여로보암의 집은 제대로 망했다. 아들 하나는 병들어 죽고, 나머지 하나는 왕이 되지만 2년 만에 부하의 모반으로 사망. 그리고 후대 북이스라엘 왕들의 악행을 기록할 때마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라는 서술이 붙는다. 그 중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까이는 왕이 바로 아합.

여로보암의 영향으로 그 후 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좋은 북이스라엘 왕은 한 사람도 나오지 않으며, '왕이 우상숭배' → '모반, 질병, 전사 등으로 죽고 다른 사람이 왕이 됨' → '다시 처음으로'가 계속 되풀이된다.

남유다의 경우는 다른 종교를 들여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북이스라엘보다 낫다고 평가되나 여러가지 이유로 다윗, 솔로몬 시대에 비하면 황량하다. 주로 '하느님 말씀을 잘 듣는 왕이 나타나 흥함 → 하느님 말씀 안 듣고 우상숭배하는 왕이 나타나서 망함 → 다시 하느님 말씀을 잘 듣는 왕이 나타나 흥함'의 반복. 그래도 신실한 왕 비율이 북왕국에 비해 높은 편이다.

아래 표를 보면 남유다에서 아사 왕이 재위할 동안 북이스라엘은 왕이 6번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파일:attachment/1_KING.jpg
4. 열왕기하(열왕기 하권, 2열왕)[편집]
열왕기상에 이어서 북이스라엘의 멸망, 남유다의 멸망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북이스라엘은 아합의 집안이 완전히 망하고 '예후'가 왕이 되었는데 북이스라엘로서는 매우 희귀하게도 하느님이 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해 5대까지 왕조가 지속된다.[7] 그 이후로 동네북으로 전락하는데,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 왕 때에는 아람 왕 하사엘과 그의 아들 벤하닷에게 박살이 났다. 그나마 여호아스(요아스) 때에는 벤하닷과 3번 싸워서 이기고 몇 개 지역을 되찾아왔는데 왜 하필 3번 이겼는지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자 이스라엘 왕 여호아스는 엘리사가 있는 곳으로 내려와서 얼굴을 비비며 통곡하였다. 그가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지키던 병거여, 기병이여…." 하고 외치자 엘리사가 왕에게 말하였다. "활과 화살을 가져오십시오." 왕이 활과 화살을 가져오자, "화살을 메워 당기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왕이 활을 당기자 엘리사는 자기의 손을 왕의 손에 얹고 "동녘 창을 여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창을 열자 엘리사가 말하였다. "쏘십시오." 왕이 활을 쏘았다. 그러자 엘리사가 "그 화살로 야훼께서 승리하실 것입니다. 그 화살로 시리아를 쳐 이기실 것입니다. 임금님께서는 아벡에서 시리아군을 여지없이 쳐부수실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엘리사는 또다시 왕에게 화살을 잡으라고 하였다. 왕이 화살을 잡자, 그 화살로 땅을 치라고 하였다. 왕은 땅을 3번 치고 그쳤다. 그러자 하느님의 사람이 왕에게 화를 내며 말하였다. "임금님께서 대여섯 번 쳤으면, 시리아군을 여지없이 쳐부수셨을 터인데, 3번만 쳤으니 시리아군을 3번밖에는 쳐부수지 못하겠습니다."
열왕기하 13장 14~19절(공동번역성서)

여호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2세는 북이스라엘 왕 중 가장 긴 41년 동안 왕위에 머물며 하맛 어귀에서 아라바 해까지 국토를 회복한다. 그런데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여로보암 2세가 잘해서 그런 게 아니라, 하느님이 보기에 북이스라엘이 거의 멸망할 위기인지라 놔두면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죽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뒤엔 역시나 열왕기상의 반복으로 죄(우상숭배) → 모반으로 사망 → 처음으로 돌아감이 계속되다가 호세아 왕 대에 이르러서 앗수르에 하던 조공을 끊고 이집트에 사절단을 보내다 딱 걸려서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로 쳐들어와 성을 함락시키고 호세아를 잡아 가두었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침공으로 BC 722년 경에 역사속으로 사라진다.[8] 이후 앗수르에서 사마리아로 많은 이민족들이 이주해 하느님과 원래 믿던 신들을 함께 믿으며 거주하게 된다. 선민사상이 강했던 유대 사람들이 신약시대에 사마리아 사람을 낮게 여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남유다는 중간중간 하느님을 잘 섬기는 왕이 등장했기 때문에 북이스라엘보다는 왕정을 더 오래 유지했다. 하지만 히스기야 왕의 아들 므낫세 왕 때부터 본격 막장테크를 타기 시작했는데,[9] 여호아하스 왕 때부터 이집트나 바빌로니아에게 침략을 받아 왕이 잡혀가고, 시드기야 왕 때 바빌론에게 멸망당하는 것으로 열왕기하는 끝을 맺는다. 남유다 마지막 왕의 시드기야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는데 성벽이 뚫려 바빌론 군대가 침입하자 도망치려다 붙잡히고, 그가 보는 앞에서 아들들이 처형당했으며, 눈이 뽑히고 사슬로 결박당해 죽는 날까지 갇혀 지냈다고 한다. 반면 시드기야의 전대 왕인 여호야긴이 바빌로니아에 잡혀간지 37년째 되던 해 옥에서 풀려나와, 잡혀온 모든 왕들보다 높은 자리에서 죄수복을 벗고 왕 앞에서 음식을 먹고 생계비를 꼬박꼬박 받았다는 것으로 끝난다.

열왕기상과 마찬가지로 "나머지 행적은 《이스라엘(또는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어 있다."는 서술이 자주 나온다.

파일:attachment/2_KING.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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